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세계의 끝’이란 어떤 의미일까? 시인은 희선씨에게 세상의 끝까지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유부녀인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사랑했지만 다른 사람의 아내인 그녀에게 차마 도망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메타세쿼이아는 그들이 함께 갈 수 있는 한계점이었고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여기서 첫 번째 의미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녀와의 사랑은 그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 사랑의 끝이 세계의 끝처럼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두 번째 의미는 바로 ‘그렇게요’에서 찾을 수 있다. 당장 내년 이맘때는 어떨지 모른 채, 다음 여름에도 햇살이 이렇게 뜨거울지 어떤 노래가 유행할지 다음에는 어떤 나라의 이름을 가진 태풍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사랑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마치 세계의 끝인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한다. 청년도 그랬고 아마 시인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메타세쿼이아’일까? 여기에 세 번째 의미가 숨어있다. 메타세쿼이아는 공룡과 함께 살았던 나무였으나 빙하기를 거치면서 절멸했다가 1943년에 기적적으로 발견된 나무이다. 즉 공룡이 살았던 세계는 끝이 났지만 메타세쿼이아는 살아남았다. 이러한 사실은 시인이 왜 메타세쿼이아를 선택했는지, 왜 메타세쿼이아에 편지를 묻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자신의 사랑은 끝났지만, 자신의 삶은 이렇게 끝나지만 끝을 뛰어넘는 존재인 메타세쿼이아가 그의 사랑과 생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늘 ‘세계의 끝’인 것처럼 사랑하고, 그 사랑이 끝나면 ‘세계의 끝’을 맛보게 되며, 사랑과 삶 그 모든 것이 ‘끝’을 경험하게 된다 해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09년 가을. 강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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