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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리뷰

자유의 환영


















루이브뉘엘 <자유의 환영(1974)>





자유 自由
- 명사,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 또는 그런 상태,
환영幻影- 1)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2)
사상이나 감각의 착오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보이는 환각 현상.


그렇다면 자유 ‘의’ 환영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유의 환영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상태에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보이는 환각현상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구조화하고 체계화시키며 그 안정적인 틀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언어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틀’이다. 언어는 우리의 관찰과 경험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개념적 도면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에게 물질 세계의 실체를 구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명료하게 구축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다. 언어는 세계를 재현하는 재현체계이다. 그러나 언어는 실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 재현과 실제 대상에는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언어는 선택적 조합으로 단정되어지기 때문에 착오와 틈이 생긴다. 즉 선택되어지지 못한 요소들, 차이들로 인해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체계’ 혹은 ‘틀’은 우리의 사유를 옭아맨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묶어냄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우연적이고 산발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체계로 연관시키면서 혼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과관계에 속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버려진다. 이 버려진 사건들 때문에 우리는 실체를 정확히 바라볼 수 없다. 체계 혹은 틀 속에 갇힌 것들은 매우 명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가능성들을 배제한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우리는 체계 속에서 많은 가능성들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꿈에는 체계가 없다
. 인과관계도 없다. 무의식 속에서 파편화된 조각들이 문득문득 우리의 의식을 점령한다. 시간과 공간이 어그러지고 연관성 없는 사건들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사유들이 분리작업 없이 마구 보여진다. 꿈은 체계와 틀에서 자유로운 영역이다. 꿈이야말로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보는 행위이다. 때문에 자유의 환영은 일종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들은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이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다. ‘유명한 건축물을 보며 음란하다고 말하는 부부, 새벽에 한 시간 간격으로 들이닥치는 닭 여자 집배원 타조, 아이를 옆에 두고도 실종신고를 하는 부모, 여관에서의 에피소드, 군사학교, 화장실과 식당의 뒤바뀜, 벌거벗고 피아노를 치는 경찰국장의 동생, 죽은 동생의 전화, 동생의 관을 열려고 하는 국장, 마치 한 명인 듯한 두 명의 경찰국장’ 등의 사건들을 어찌 하나의 단어 혹은 하나의 주제로 통합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차이들을 배제하고 유사성만을 추려낸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그것을 정답이라 말할 수 없다. 정답은 따로 없다. 이들의 모든 차이를 포함할 수 있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어떤 하나의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단면들을 그냥 던져주면서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때문에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체계나 틀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 굳이 인과관계를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틀에 맞추어 생각하려 할수록 우리는 실체와 멀어지게 된다.

                                                                                                                                      2009. 가을. 강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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