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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리뷰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2011)>



 

 




     주인공 한아름은 조로증에 걸린 17세 소년이다. 이 소년은 어린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아 연신 '이건 뭐야?'를 외쳐대며 온종일 말을 줍고 다녔다. 그가 주운 말들은 그의 가슴 속에 낱말카드가 되었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 맑고 가벼워 사물에 달싹 붙지 않는 이름. 단어는 자신을 한없이 쪼그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한없이 확장시킨다. 이름은 가볍고 작지만 그 이름이 표현하는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작가는 주인공의 몸피를 줄여 바깥의 둘레를 넓히고 싶었나보다. 몸피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건강하면 할수록, 나라는 존재가 커지면 커질수록 바깥의 넓이는 좁아진다. 그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이 더 넓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나보다. 작은 소년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냥 '눈'은 없다고. 싸락눈, 만년눈, 소나기눈, 가루눈, 도둑눈... '눈' 안에는 이 많은 눈들이 담겨져 있다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의 부피가 이렇게나 넓다고 말이다. 우리 곁에 있는 것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들, 소중한 것들의 부피를 쪼그라트리는 나는 아직 너무 크고 무겁다.





    아이를 갖고 싶었다. 결혼 2년차, 이제는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임신사실을 알고나서 참 많이 기뻤다. 주위 사람들도 정말 많이 축하해줬다. 아이아빠도 뛸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날 나도 모르게 슬퍼졌다. 아! 이렇게 세대가 지나가는구나. 엄마에서 나로 내게서 또다시 내 딸에게로. 꼭 엄마의 시대가 끝난 것만 같았다. 이제 할머니가 될 엄마. 지금까지 잘해드린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던 적이 있던가?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데. 이제 딸에게 신경쓰느라 엄마한테 더 신경쓰지 못하는 걸까? 아이를 임신하고 엄마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진다. 엄마가 날 이렇게 품고 있었구나. 엄마가 날 이렇게 기다렸겠구나 생각한다. 앞으로 아이 키울 생각을 하니 엄마가 새삼 대단해보인다. 어쩜 그렇게 아끼지 않고 해 줄 수 있었을까? 그렇게까지 안해줘도 됐을텐데... 어떻게 엄마는 나를 위해 자신을 그만큼 희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나는 그걸 몰랐을까?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이 말이 와닿는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맘을 안다는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낀다. 내 아이가 자라는만큼 나도 똑같이 그만큼 자라서 내가 내 아이만했을 때의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를 키우는 일인 것 같다.






    아플 때, 주위 사람에게 하게 되는 말이 있다. '내가 얼마나 아픈줄 알아?' 임신 초기, 입덧과 현기증이 심해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팔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프고, 내 몸이 내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이판 호핑투어 때 나를 애먹였던 심한 배멀미를 하루종일 하고 있는 듯도 했다. 그 때 신랑이 얼마나 미웠는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왠지모를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괜히 신랑을 쥐어박기도 했다. 어릴 적에 나는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는 집에 어떤 방문도 닫지 않으셨다. 내가 혹시 기침이라도 할까봐, 아파서 끙끙대기라도 할까봐 항상 나를 향해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내가 너무 자주 아프다보니 엄마도 지칠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아픈 내게 화를 내셨다. 왜 자꾸 아프냐고. 하루는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는데, 엄마가 화를 내는게 너무 야속해서 병원에 안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고는 울면서 민소매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 이곳저곳을 닦고 또 닦았다. 그렇게하니 열은 내렸다. 그런데 야속한 마음을 가시질 않았다.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 것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어떤 느낌이나 감정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또 나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얼마나 기쁜지, 실연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내가 얼마나 졸린지, 내가 얼마나 배고픈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인간은 참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들어 부쩍 겁이 많아졌다.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한다. 생명을 잉태하니 그런 듯 하다. 무에서 유를 경험하고 있으니,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에도 관심이 간다고나 할까. 나의 죽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나의 죽음만 생각하면 사후세계가 어떻든 아무 상관 없다. 완전한 무로 돌아가든, 잠들었다가 어느순간 부활을 하든, 천국이 있든 별로 무서울 것도 없다. 그런데 다른 이의 죽음을 생각하면, 꼭 '천국'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을 수 있게. 재회를 기다릴 수 있게 말이다. 한번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의 난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려워진다. 출근하는 남편을 볼 때, 멀리 여행가시는 부모님을 볼 때, 아니 일상적인 순간순간들마다 그렇다. 병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병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 행복한 것이다.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깨질까봐 두려운거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이 행복을 누려야겠다. 불안해하는 동안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테니까. 

                                                                                            2011년 8월 6일 토요일. 강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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